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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생각 3 : "정도(正道)의 삶?"/성평등, 반폭력 인권의 삶

화해와 공존의 사회를 위해, 강지원 변호사

화해와 공존의 사회를 위해, 강지원 변호사


2004년을 하루 남긴 날, 몸도 마음도 부산했던 일정을 마치며 강지원 변호사를 만나기로 한 강남문화원으로 향했다. 이 날은 지난달 네티즌이 밀양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며 촛불집회를 가졌던 날만큼 추웠다. 연말이라 곳곳에 빛나고 있는 예쁜 조명들과 찬 바람, 그 속에서 환히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2004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이켜봤다. 무엇보다 성폭력문제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두로 떠올랐던 한 해.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춥다는 한 마디 없이 촛불을 들고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던 네티즌 얼굴 하나하나가 눈 앞에 펼쳐졌고, 그런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렴해 피해자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한 강지원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내 가슴은 어느새 따뜻해지고 있었다.


◆ 여성들과 청소년의 수호천사로 변함없이 

- 많은 사건들 중에 여성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많이 하시고 계신데요. 

강지원: 네. 2004년 초에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무료 변론 한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그동안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들로부터 선불금 갚으라는 민사소송이라는가, 선불금 떼어먹고 도망갔다는 형사고소를 당하거나 하는 등의 법적인 공격을 엄청나게 받아왔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방어하는 것을 도와주다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오히려 피해자들은 여성들인데 업주들로 법률적으로 공격만 당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역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피해 여성들이 업주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을 무료변론 했었죠. 

저는 2002년 11월에 변호사로 전직하면서 1% 나눔 정신에 입각해서 변론 하겠다고 결심했었거든요. 성매매 피해 여성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 등 무료 변론을 쭉 해왔어요. 이번에 밀양 사건도 무료 변론한 거고, 오늘은 살인범 유영철의 피해여성 유가족들이 ‘가출신고를 했는데 제대로 수사해 주지 않은 점’에 대해 국가 상대로 소송해 달라고 찾아오셨어요. 유영철 사건 피해 여성들도 마사지 출장 등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잖아요. 이것도 무료 변론하기로 했어요. 일련의 무료 변론한 사건들은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사회 운동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죠. 내가 법률가이기도 하지만 사회 운동가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 성폭력사건을 많이 맡고 계신데요,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의 전반적인 처리과정 중 가장큰 문제점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강지원: 지금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저를 많이 찾아와요. 여성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형사고소나 민사 배상청구 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 청소년이요. 그런데 워낙 가해자들이 간교하게 부인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요. 정말 큰 문제죠.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고소한다는 것 자체가 전쟁과 같아요. 가해자들이 정말 간교한 수법으로 없는 알리바이를 끝없이 만들어내고 피해자들로 하여금 2차 피해를 보게끔 만드는 사례가 너무나 빈번합니다. 이런 것도 문제인데 이들을 수사하는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비우호적으로 피해자들을 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쟁이라 표현한 거예요. 이번 밀양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성폭력 사건 처리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해요. 심지어 법원에서 가해자가 기소돼서 재판 받는 과정에서도 피고인의 변호사가 피해자에게 아주 모욕적인 질문을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강압적으로 몰고 말이죠. 피해자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합니다. 이번 밀양 사건 피해자들도 수사가 검찰로 넘어갔는데도 3번이나 출두했어요. 그래도 경찰들에게 수사 받을 때보다는 검찰 측에서 친절하게 잘 해주었지만 3번이나 또 출두할 수밖에 없었어요. 


- 청소년 보호와 여성인권을 위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이나 여성들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회풍토는 어떤 게 있을까요? 

강지원: 사회적 편견이에요. 여성 잘못에 대해 굉장히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죠. 성매매 피해여성 경우나 성폭력 피해 여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미니스커트 입었으니 성폭력 당해도 싸다 뭐 이런 식의 편견이요. 또 이혼녀라던가 가정폭력 피해자인데도 여성이란 이유로 백안시하고 색안경을 끼고 본다든지 그런 사회적 편견이 엄청나게 커요. 
이런 사회적 편견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요. 



◆ 밀양 성폭력사건으로 특별해진 네티즌과의 인연





- 혹시 디시인사이드에 대해 아시는지요? 

강지원: 밀양 사건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죠. 물론 아침에 신문을 읽지만 인터넷으로 뉴스검색도 많이 하면서 인터넷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낮에 틈나는 대로 인터넷 하는 시간을 가져요.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는 현재 운영하고 있지는 않아요. 관리부담이 너무 크거든요. 시간도 많지 않고요.


-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은 지난 12월에 발생한 밀양 성폭력 사건으로 강지원 변호사 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밀양 사건은 어떻게 맡게 되셨는지요? 

강지원: 사건발생 직후 인터넷매체 한 기자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많은 네티즌이 이번 밀양사건 피해자들을 위해 강지원 변호사가 변론을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그런 여론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더라고요. 사실 그 당시 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그 연락을 받고 알아보니 정말 그런 여론이 강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또 다른 울산 방송기자가 네티즌 의견을 보고 연락해서 이 사건을 맡을 용의가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죠. 


- 이번 밀양 사건에 대해 무엇보다 네티즌들의 연대행동이 많이 이뤄졌는데, 이런 네티즌들의 직접행동 어떻게 보세요? 

강지원: 전 이번 밀양 사건을 맡으면서 무엇보다 네티즌들이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폭발적인 반응에 많이 놀랐어요. 정말 건강한 행동이라 생각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있는 성교육이란 생각도 했죠. 그리고 젊은이들의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죠. 한쪽의 젊은이들은 여학생들을 집단으로 유린하고 폭력을 가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의 젊은이들은 이 성폭력을 규탄하고 가해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 현재 밀양 사건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강지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조사가 끝나는 대로 피해자들이 조만간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에요. 현재 피해자들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정신과 병원에서도 즉시 입원을 지시할 정도로 상태가 심해요.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진행된 네티즌들의 모금운동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천 원, 만 원 등의 적은 돈이 모이고 모여 70여만 원 정도의 성금이 모였습니다. 네티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또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전해드리겠습니다.


- 네티즌들이 최진실 씨 변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강지원: 지금 서면공방 중에 있고요, 오는 2월 지나서 법정에서 변론 있을 예정이에요. 처음에는 최진실 씨 일이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라 인식을 하고 무료 변론을 해주기로 했었는데 의외로 서민 분들이 돈 많은 사람 무료 변론 해준다고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한 번은 택시를 탔었는데 택시 기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아하, 그렇다면 내가 받을 돈을 가지고 밀양 사건 피해 학생들과 성폭력 방지사업에 쓰면 되겠구나 했죠. 그래서 은근히 최진실 씨에게 권유했더니 흔쾌히 동의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올 돈을 돌려 주기로 한거죠.



◆ 특별했던 2004년, 한 해를 보내며


- 2004년에는 변호사 활동뿐만 아니라 방송활동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강지원: 네. 2003년 7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한 1년 정도 “안녕하세요, 강지원입니다”라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또 EBS에서 ‘선택, 화제의 인물’이라는 토크쇼도 진행했었고요. 금년에는 방송 때문에 정신 없었어요. 아침에는 라디오, 저녁엔 텔레비전. (웃음) 두 가지 모두 시사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래서 정치문제를 많이 다뤘어요.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한국사회의 당파성이 극심하다는 점이었어요. 심지어 한국사회는 당파사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 그럼 진행을 하시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은 없으셨어요?

강지원: 사실 방송활동 제의를 받을 때부터 난 시사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몇 차례 거절을 했었어요. 다만 사회의 건강성을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청소년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으로 생각하자는 제안에 결국 수락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난 처음부터 정 중앙의 위치에서 진행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철두철미하게 공정한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각오로 방송에 임했죠. 그리고 나름대로 공정하게 진행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듣는 이들이 워낙 당파성에 빠져있다 보니 제가 정말 엄청난 오해를 받았다는거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느 편이세요?”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전 정 중앙의 입장이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이번에 방송을 그만둔 큰 요인이기도 해요. 그리고 또 제 아내가 대법관이 되었잖아요. 대법관은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하는 직책이거든요. 제가 오해 받는 건 괜찮지만 그 영향이 아내에게 미친다면 남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방송을 관둔 거죠. (강지원 변호사와 김영란 대법관은 부부 사이 입니다)


- 그럼 본인이 생각하시기에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강지원: 네, 난 그래요. 난 정치적 편향성에 빠지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해요.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거예요.


- 작년 몇몇 음악회에서 노래도 부르신 걸로 알고 있는데 평상시에 음악 좋아하세요? 

강지원: 2004년에 여러 가지 문화적 활동을 가졌어요.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고 타의에 의해 시작된 거예요. 초등학교 때 음악 콩쿠르 결선에 나간 기억은 있는데 상 받은 기억이 없으니 아마 떨어졌던 것 같은데. (웃음) 청소년기에도 음악에 소질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매일 공부공부하면서 입시준비 때문에 그런 달란트를 개발해 볼 기회가 없었어요. 요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한 메조소프라노가 권유를 해서 2004년 한 해 동안 테너 분께 성악 레슨을 받았거든요. 그렇게 한 이유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무시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거예요. 올해 만으로 56살이 되는데 뒤늦게 성악 레슨을 받았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청소년들한테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거였죠. 지난 가을에 음악회 무대에 섰었죠. 이것뿐만 아니라 올해 문화적 활동을 많이 했어요. (웃음) 모델도 하고 마당극 주인공, 게다가 영화 카메오 출연까지요. 저에게 2004년은 문화적 활동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 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저에게는. 그 이유는 문화적 활동은 비폭력성적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사회가 너무 갈등과 대립, 폭력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아요. 문화적 활동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비폭력적인 인성의 함양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 한 개인, 한 사람 강지원


사진: 김민정



-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기는 무엇이었나요

강지원: 청소년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이 큰 전환이 되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형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고 아주 출세적인 또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그것들이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 그럼 그 이전에는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셨나요?

강지원: 네.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이런 출세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이 잘못된 거구나’,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줘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또 나와 같은 이런 시행착오를 겪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제 삶은 크게 변화했죠.

- 김영란 대법관님이랑 같은 길을 걷고 계신데, 어떤 순간에 가장 동반자로서 큰 믿음을 느끼세요? 아무래도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이다 보니, 여러모로 서로 힘이 될 때가 많으실 것 같아요. 

강지원: 서로 같은 직책에 있다 보니 우선 쓸데없는 오해가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법률적인 토론을 많이 하는데 그 토론이 서로에게 굉장히 유익해요. 혼자서 결심해야 할 때가 많아요 판검사들은. 혼자서 외롭게 결심해야 할 때가 많은데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니까 남들과 상의할 수는 없거든요. 그럴 때 토론을 많이 하면 서로 많은 도움이 되죠. 


- 많은 활동을 하셨지만 앞으로 ‘이건 꼭 해보고 싶다’는 게 있으세요? 

강지원: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없고요. 사회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너무 당파적으로 갈등이 심해서 초당파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초당파적인 운동을 해서 서로 화해하고 공존하는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각각의 적성을 찾아서 개발하는 운동을 계속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강지원: 난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성폭력이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합니다. 우리나라 성폭력 특별법이 2004년에 만들어진 지 딱 10주년이 되는 해였거든요. 그런데 법은 있으나 인식의 변화는 크지 않은 것 같아요. 네티즌에게 ‘제 2의 성폭력방지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특히 남성들의 유흥문화 등을 바꾸는 운동과 함께 수사, 재판 과정에있는 담당자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강지원 변호사를 언론에서만 접하면서 ‘진정으로 여성과 청소년 입장에서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도와준다는 입장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입장에서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일까’…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러나 내가 만나 본 강지원 변호사는 충분히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네티즌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다. 모든 사회적 약자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있을 강지원 변호사의 노력이 새해에도 변함없길 바래본다. 더불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든 억압과 폭력이 줄어드는 2005년을 그려본다.


채혜원 cherry@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