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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김영란의 삶/부부 인터뷰

“이웃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1)

강지원·김영란 부부

이웃들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 다음 기사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아래는 기사원문 주소)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10408172123343

삶의 귀감이 되는 '참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에, 바람직한 사회지도층의 행보를 보여주는 부부가 있다.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동분서주하는 강지원 변호사와 이 세상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넉넉한 품을 가진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김영란 위원장의 모습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아본다.

다시 쓰는 '성공'의 의미

각자 삶의 방식에 따라 '성공'이란 단어의 정의는 다르게 쓰이겠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개념에 비추어본다면 이 부부만큼 성공한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남편 강지원 변호사(62)는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하고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 생활을 하던 중, 1976년 제18회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하며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이후 30년 가까이 검사의 길을 걸어왔고 사법연수원 교수, 초대 청소년위원회 보호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3년 검사직 퇴임 이후에는 청소년 인권 변호사로 청소년들의 삶을 희망으로 물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대표,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지역분과위원장, 자살예방대책 추진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지난 1 1일부터 새로이 중책을 맡아 다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55) 또한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자리를 거쳐왔다.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중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판사로 임용돼 30여 년을 법조인으로 살아왔다. 동기 중 최초로 부장판사로 진급했으며, 특히 2004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되며 더욱 크게 알려졌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8. 사법 역사상 40대 대법관이 탄생한 것은 16년 만의 일이고, 그것도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른 연공서열을 10년 이상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리고 지난해 8 '소수자를 위한 법치주의의 확대'라는 법조인으로서의 신념을 실천해온 대법원 임기 6년을 마무리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지금껏 각종 '최초'라는 접두사의 주인공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어왔다.

'
성공'한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세상 탓일까. 김 위원장 대법관 퇴임에 맞춰 당분간은 차분히 어제를 둘러보고 내일을 설계하고자 마음먹었던 부부는 최근 다시 정신없는 일상으로 돌아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강지원 변호사는 지난해 11월부터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 진행을 맡아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청취자들에게 사회 각 분야의 소식을 전달하는 중이다.

2004
, 자신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생명'인 아내의 대법관직 수행에 혹시나 피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의를 표한 후 6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위해 강 변호사는 매일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뉴스는 물론 요일별로 전문적인 현안을 심도 있게 분석해내야 하는 터라 품이 여간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법관 생활을 마감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바람을 밝혔던 김영란 전 대법관 또한 지난 연말 단행된 부분 개각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직에 복귀하게 됐다. '판단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는 판사로서 얼마나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주었는지, 얼마나 슬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는지,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는지 항상 자문해왔다'는 김 위원장은 퇴임사에서 '늘 무겁기만 했던 그 칼'을 반납하고 세상으로 나가며 "30년 가까운 법관의 경험을 살려 세상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새 길을 찾아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첫걸음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떼게 된 것이다.

LADY
실로 오랜만에 정해진 울타리에서 벗어나 부부가 마음 편히 지내시게 되려나보다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신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김영란


퇴임 후 몇 달 동안 식구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보고 싶던 책도 실컷 보고, 운동도 하면서 여유를 부렸는데 결국 다시 시간 맞춰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게 됐어요. 판사 생활 할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오전 내내 기록에 묻혀 있다가 점심 먹고 또 기록을 읽다 하루를 마감했는데,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사무실 밖의 일이 더 많다는 것이 다른 점이에요. 국회에도 가봐야 하고, 회의도 많고, 현장에 나가 민원 해결도 해야 하고, 각종 대내외 행사도 많고요. 종일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저녁이에요.

강지원

저도 지난해 변호사 사무실도 없애고 잠시 자유인 생활을 만끽할 마음을 먹었는데 한편으로 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많더라고요. 청소년 문제뿐 아니라 각종 '사회 운동가'로서 뛰어다녀야 할 일들도 많고요. 아내도 저도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매인 몸'이 되어버려서 사실 좀 안타까워요.

LADY

김 위원장님의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임명 소식은 좀 의외였습니다.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강 변호사님과도 의논을 하셨는지요?


김영란

처음에는 저도 위원장 내정 제의에 닷새 동안 사양의 뜻을 전했어요. 행정 경험도, 기관장 경험도 없는데다 평생 재판만 해온 제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며 자유도 누리고 싶었고요. 제게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제3자적 입장에서 업무를 크로스 체크하는 역할을 기대한 것 같아요. 나중에는 도저히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어려운 민원을 해결해주고, 공직사회 부패 예방 및 교육 정책을 만드는 업무가 제가 30여 년 동안 해왔던 일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일반 행정 업무를 집행하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행정부 감시 기능을 하는 독립적인 기관이라는 점에서는 사법부에서의 판사 역할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강지원

저도 처음에는 아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마음 편히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능력이 된다면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옳다싶어서 적극적으로 봉사하라고 했어요. 아직 한창 일을 더 해도 될 나이기도 하고, 가진 능력이 있다면 사회 발전을 위해 발휘해야 한다고 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