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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생각 2 : "애타(愛他)의 삶?" /청소년사랑의 삶

청소년, 이번엔 입시로부터 보호할 차례입니다.

이번엔 입시로부터 보호할 차례입니다

2005-07-04 12:10:29

강지원 변호사의 경력은 참 화려하다. 
청소년교화기관 서울보호관찰소장,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 도시형대안학교 이우 설립대표,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 일요일 일요일밤에 청소년 관련 코너 진행 등 법조계 보다는 청소년계에서 더 많은 직책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학생을 위해 무료 변호를 하기도 했다. 

강지원 변호사는 1972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행정고시 1, 2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6개월 후 다시 도전한 그는 사무관이 되었다. 당시 70년대 중반에는 공직사회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툭하면 공무원들이 구속되었다. 공무원 사회의 비리에 신물을 느낀 그는 다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1976년 그는 당당하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보호관찰소에서 시작된 청소년 사랑

서울지검의 공안부와 특수부를 거친 그는 1989년 청소년 교화기관인 서울보호관찰소장에 임명됐다. 보호관찰소는 교도소나 소년원과 달리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은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지 않고 주기적으로 선도 및 교화시키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서울보호관찰소장을 맡은 그는 소년사범들을 만나보며 ‘청소년 범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막상 만나보니 보통 청소년 같았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모두 얼굴이 험상 궂을 줄 알았거든요. 보호관찰소에서 한달에 한번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부터 심리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호관찰소에서 만난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처벌보다는 이해하고 용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인간 누구나 성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한 때의 나쁜 심성 즉 ‘욱’하는 성질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한다.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해 교육학부터 심리학까지 200여권의 서적 독파, 
솔선수범 위해 스스로 술과 담배도 끊어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청소년에 대한 애정은 1997년에 꽃피기 시작했다. 역사상 처음 출범하는 청소년을 위한 정부기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초대위원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초대위원장으로서 그가 남긴 성과는 당시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소년 성매매범 신상공개, 유흥업소 밀집지역에 대한 청소년 야간통행금지, 담재나 술을 파는 유해업소에 대한 과징금 부여제도 등 지금의 청소년보호제도는 대부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그는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에게 꿈을 줄 수 있는 교육, 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문화관광부 산하에 있던 청소년국과 국무총리 산하의 청소년보호위원회를 통합할 것을 주장했다. 그 결과, 강지원 위원장은 임기4년을 채우지 못하고 3년만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청소년 보호와 육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보호와 육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애매모호한 일입니다. 당시 청소년국과 청소년보호위원회를 통합할 것을 주장하며 제 자리를 걸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청소년보호위원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두 부서는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관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당시 강지원 위원장이 청소년 부서의 통폐합을 주장한지 5년이 지난 지금, 그의 바램대로 청소년국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통합하여 올해 초 ‘청소년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청소년을 위한 보호와 육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바램은 더욱 커졌다. 

“생명과 신체의 안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만은 아닙니다. 
저는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가족문제를 연구하면서 사회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회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금 ‘문화적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그저 입시에 매달려 점수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만 끊임없이 발달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적 감수성이 높아지면 폭력성이 줄어들고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듯이, 좌뇌와 우뇌를 고르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건, 농업을 담당하는 사람이건, 사업을 하는 사람이건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사회에는 ‘덕체지’가 중심이 되는 전인교육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청소년을 만난 그이지만, 강지원 변호사의 가슴에 가장 큰 자리로 남아있는 한 사람이 있다.

20년전 당시 15살이었던 그 아이는 오토바이를 훔치다 경찰에게 붙잡혀 보호관찰소에 오게 되었다. 그 아이와 마주 앉은 강지원 변호사는 자신이 먼저 말하기보다 그 소년의 말을 다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며 편부모 밑에서 자란 자신의 가슴 속 아픔을 털어놓았다.
강지원 변호사는 이 소년과의 만남을 계기로 청소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교육학에서부터 심리학까지 관련서적 200여권을 독파하고, 솔선수범을 위해 스스로 술과 담배를 끊었다. 

비행청소년들과 상담을 할 때에는 나의 회고록, 나의 성격 중 좋은 점과 나쁜 점, 나의 결심 등을 작성하도록 하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를 부모 앞에서 발표시키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발표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편 도서관 청소, 눈 치우기 등 사회봉사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여 심리적, 정서적 치료에 중점을 둔 결과, 청소년 범죄자 재범률이 종전 20%에서 6.4%까지 떨어져 그는 1991년에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제는 입시지옥으로부터도 보호해야 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청소년 위원회를 비롯한 청소년계 어른들을 향해 “청소년이 가장 필요한 것에 착안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그는 청소년을 폭력과 성폭력 뿐만이 아니라 입시지옥으로 부터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들은 입시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육계와 청소년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강지원 변호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청소년을 비롯하여 청소년을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청소년들의 꿈을 어디에서 찾게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참된 행복과 성공은 돈, 권력, 명예, 인기, 지위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계발하며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삶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강지원 변호사, 짧은 만남 속에서도 그의 명성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가정환경의 중요함을 알았고, 결국은 사회적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강지원 변호사,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실천 속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꿈’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가 왜 ‘청소년 지킴이’라 불리우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는 단지 청소년을 보호하는 ‘지킴이’가 아닌, 청소년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청소년 ‘지킴이’였다. 

<최룡훈 기자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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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vop.co.kr/view.php?cid=26131&mode=mob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