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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생각 3 : "정도(正道)의 삶?"/법조, 불편부당 정의의 삶

"검찰 독립성 확보에 나서겠다"

      "검찰 독립성 확보에 나서겠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그러나 이 우화에는 문제가 있다. 도대체 세상에 어떤 '미친 토끼'가 어떤 '미친 거북이'와 경주를 하느냐는 것이다. 토끼는 토끼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하나는 껑충껑충 뛰는 재주를, 다른 하나는 엉금엉금 기는 재주를 타고 태어났다. 그런데 왜 그들이 경주를 하는가.

인간은 타자와 경쟁해 승리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다. 자기실현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도록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늘 입시 철이면 꽃다운 10대들의 자살이 속출하곤 했다. 하루바삐 삶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최근에 변호사 개업을 한 강지원 전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해 11월 13일 조선일보에 쓴 '경쟁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시론의 일부다. 우리 사회 경쟁구도의 정점에 서 있는 KS(경기고·서울대)출신 검사가 쓴 글로는 언뜻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24년간의 검사시절의 절반 이상을 한직을 자원하면서 청소년·교육 운동을 벌여온 그의 이력을 알고 보면 그리 놀랄만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대안학교로 진학하겠다는 본인의 뜻을 받아들여 전남 담양의 '한빛고등학교'에 큰딸을 보냈고, 중3인 둘째 딸도 대안학교 진학을 원하고 있다.

▲ 강한 톤으로 검찰을 비판하고 있는 강지원 변호사.
2002 황방열

97년 출범한 청소년 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강 변호사는 미성년자 주류판매 금지, 청소년 상대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이 입법화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밖에 어린이 청소년 포럼 대표, 성남시 분당에 짓고 있는 대안학교 '이우'(以友)의 공동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평등실천 100인 위원'의 위원, 효 엑스포 조직위원 등이 굵직한 그의 이력이다.

"해방 50년 동안의 검찰 수뇌부의 상당수는 대단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 그가 검찰을 떠나면서 '검찰의 독립성 확보'라는 또 다른 운동에 나섰다. 지난 8일 퇴직인사차 서울지검 기자실에 들러 "정치검사들은 검찰을 떠나 솔직하게 출마하라"며 "독립투사와 같은 젊은 검사들이 필요하다"고 일갈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지난 27일에는 박연철, 이석연 변호사등 재야 법조인 33명과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청와대는 검찰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했다. 또 '정치검사 열전'을 발간하겠다고 밝혀 법조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 서초동 서울지검 바로 앞에 있는 그의 법률사무실 '청지'(淸芷)에서 만난 강 변호사는 검찰에 대해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지난 50년간 검찰을 이끌었던 인물들 중 상당수는 매우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나친 것 같다"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이 총장과 장관을 했는지, 어떻게 권력과 유착됐는지, 보면 다 아는 것 아니냐"며 일축했다. "요직경쟁에 매몰된 정치검사들에 오염돼 온 기존 검찰에 대한 혐오 때문에 퇴임식도, 꽃다발 증정도 거부했다"며 현재 검찰의 모습에 대한 극심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조천훈씨 폭행치사사건'에 대한 독설도 빠지지 않았다. 검찰간부들이 다른 데 신경을 쓰느라고 본래 챙겨야 할 일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젊은 검사들이 희망"이라며 "문제는 출세를 위한 줄서기가 강요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검찰 개혁의 한 방안으로 총장이 수사지휘를 넘기고, 검찰권 행사방향, 직원들에 대한 복리, 인권보호, 과학적인 수사기법과 기자재 도입 등에 전념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안학교 나온 내 딸이 나보다 삶에 대한 만족감이 클 거다"

그는 또 청소년 교육운동이 본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답게 현재의 교육상황에 대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교육을 개성을 말살하는 '타락한 출세주의교육'이라고 규정했다. 강 변호사는 "내가 출세주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교육운동에 나서게 되면서부터"라며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대안학교를 찾아간 큰딸이 그 무렵의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했고, 스스로의 행복감도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02 황방열

-퇴임식, 기념사, 꽃다발 증정도 거부했는데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글세, 사양이라고 할까. 청소년 사업, 교육운동이 내 본업이었습니다. 그 일을 더 잘해보기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사무실만 바뀌는 거라 의례적인 부분을 사양한 것이죠. 오랫동안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또, 현재와 같은 검찰에서 그런 세레모니를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런 심정까지 갖게 됐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24년 동안 느껴온 기존 검찰에 대한 하나의, 음, 뭐랄까 소회의 피력이었습니다. 평검사 이후 정식으로 부장, 차장, 지청장을 단 한번도 안 하고 2선이라 불리는 자리들만 자청해서 찾아다녔습니다.

그때부터 이런 검찰에서 요직을 한다는 것은, 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치검찰, 요직경쟁이 검사들을 타락시켜왔습니다. 줄서기, 선대기 등 인사 때가 되면 엄청난 잡음이 일어났었어요.

젊은 검사들은 순수합니다. 정의감도 강하고 권력부패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죠. 그러나 승진구조에 편입되면서 순수함을 잃게 됩니다. 그런 비참한 현실이 나는 싫다, 절대로 백을 쓰거나 연줄로 출세하고 싶지 않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뭐 하러 세레모니하고 떠나겠습니까. (활기차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지난해 청소년 교육에 전담하겠다는 생각에서 지청장 승진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일찍 검찰을 나오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일찍 나올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 활동에 전념하다 보니 결단할 기회를 놓쳤던 것 같아요."

-검찰에 있을 때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효과가 큰 것 아닙니까?

"검찰의 조직생리상 내부에서 개혁을 말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상하관계가 철통같습니다. 법원의 사법파동 같은 게 일어나기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승진과 요직을 포기하고 지내면서 검찰 외부에서 검찰 개혁을 주창하는 역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치검사 열전 만들겠다고 하니까 밥 먹자는 사람들 있더라."

-정치검사 열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셨는데.

"권력과 검찰의 유착에 대해 지금까지 보도돼온 것은 지엽적입니다. 보도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사망하기 전에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정인에 대한 평가보다는 역사 기술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생각입니다. 역사에 바로 기록되기 위해서 젊은 검사들 먼저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 계획을 밝힌 뒤에 압력이랄까, 연락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허허허)밥 먹자는 전화들은 왔었어요."(전화를 걸어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계속 물었으나, 그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검찰총장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솔직히 초임검사 시절에는 '나 정도 수준의 사람이 검찰총장 그 까짓 것 마음만 먹으면 못하랴'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도 줄 서기 하고 나서면 선댈 곳이 없겠습니까? 타락할 마음만 먹으면 말이에요.

청소년 운동하면서 '참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책도 많이 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는 게 참된 성공이다, 이런 내용으로도 강연 많이 했습니다. 그런 강연하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검찰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해방 후 50년 동안 검찰수뇌부의 상당수는 매우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정치검사의 특징에 대해 한 마디 할까요. 자신이 정치검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조국을 위해 일했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이 말을 하면서 매우 크게 웃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 했다.)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 있을 듯한데 소개를 해 주시죠.

"아직 본인들이 살아있습니다. 언젠가 얘기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문치사 사건, 검찰 간부들이 정치에 신경 쓰다가 생긴 일"

-역시 검찰의 제일 큰 문제는 정치검사입니까?

"그렇죠. 정치검사가 나쁜 것은 검찰을 정권에 예속시키는 것도 있지만, 생각이 딴 데 가 있어 본래 해야 될 일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고문치사사건도 간부 검사들이 다른 데 신경 쓰느라고 챙겨야 할 것을 못 챙겼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내가 검찰총장이라면 모든 사건에 지휘를 포기하겠습니다. 왜 모든 중요사건에 대해 총장의 의견을 묻습니까. 그러면 검사들이 왜 있습니까. 대한민국에 검사는 총장 한 명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사 지휘는 모두 일선에 맡기고 총장은 검찰권 행사 방향이라든가 직원 복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인권보호, 과학수사기법, 수사관 양성 등등 고민할 게 얼마나 많아요. 일일이 사건보고 다 받고 지시까지 다 해야 할까요."

-대통령과 매주 독대하는 검찰총장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기자들이 취재해 보십시오.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특종이 될 겁니다."

-존경하는 검사가 있다면.

"몇 분 있습니다. 전주지검 초임검사 시절 차장검사셨고, 대법관을 지낸 이명희 변호사(69)와 서울지검 특수부 시절 부장이셨던 송종의 선배(61), 그리고 공판부 검사 때 부장이던 차정일 변호사(61)를 존경합니다. 세분의 공통점은 검찰 총장, 장관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심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청소년·교육운동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

2002 황방열

-청소년·교육 운동과 관련을 맺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초임검사로서 전주지검에서의 첫 업무가 소년담당검사였습니다. 그 때 교장초청해서 간담회도 자주 열고 상담도 하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그 뒤 서울지검으로 왔다가 89년도에 자청해서 공판부에 갔더니 공판실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서울보호관찰소장 겸직이었죠. 날개를 달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변호사도 그렇고 부인인 김영란 서울지법 부장판사도 기존 제도교육 체계의 정점에서 교육을 받아 온 분들인데 큰딸을 대안학교에 보낸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얘기한 대로 우리 부부는 제도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좋다는 학교만 찾아다녔고, 고시도 했습니다. 내가 주변에서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자식들을 서울대 법대에 보내지 않느냐는 것이었는데요.

내가 청소년 교육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기필코 서울대에 보냈을 겁니다. 잠 못 자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달달 외우게 해서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타락한 획일적, 출세주의 교육관입니다. 획일적이어서 개성을 말살하는 거예요. 나는 내 딸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게 기다렸습니다.

둘째도 언니가 하는 것을 봐서 그런지 지, 덕, 체 균형교육이 가능한 대안학교를 원하고 있어요.

-지금의 큰딸과 변호사님의 그 무렵을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나는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에 꽉 차있었습니다. 고시 붙으면 출세하는 줄 알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타락한 방식이었습니다. 내 아이는 사회적 출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행복감은 더 큰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적성을 찾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허영에 빠집니다. 둘째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걸 찾는 사람은 신바람 나고 행복합니다. 1등 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꿈은 거기서 이뤄집니다."

-자녀들 교육문제로 부인과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 판사(강 변호사가 부르는 부인의 호칭)는 가정법원 소년부 판사 하면서 나와 동지적인 관계가 됐습니다. 참 고맙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변호사 개업했지만, 큰돈은 못 벌 것 같습니다. 전관예우도 못 받을 것 같고."형편 어려운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내가 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