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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생각 1 : "애기(愛己)의 삶?" /생명존중의 삶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1만5400명 희생 당했다"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1만5400명 희생 당했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자살 공화국에서 생명 공화국으로!

 

기사입력 2011-06-22 오전 10:23:50

                             

                                   

 

눈 뜨면 자살 소식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소식을 전한다.

농림부 장관 출신의 현직 국립대학교 총장 자살 소식이 귓가에서 아직 떠나가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전남문화산업진흥원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17일에는 가난에 허덕이다 자녀 둘과 함께 자살한 부부의 이야기가 더욱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단 하나뿐인 생명이기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기에 이들의 자살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자살은 자살한 이들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 이웃들도 함께 큰 고통을 겪게 만드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뒤 이어 자살하게 만드는 위험이다.

너무나 심각한 자살 실태에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2003년 영화 제목으로까지 쓰였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학창 시절 달달 외웠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 공화국일까?"하고 선뜻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살 공화국이다"라고 한다면 아마 이 말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만 고개를 저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서 자살을 하도 많이 해대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인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자살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현직 대학 총장, 유명 탤런트, 유명 가수, 유명 축구 선수, 유명 아나운서, 재벌가 자녀, 수재 대학생, 노동자, 노인, 중·고등학생 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는 자살이라는 '바이러스'가 신종 플루처럼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자살은 시·도와 도시,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력 고하를 따지지도 않는다. 자살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다.

왜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자살이 만연하는 것일까? 자살 위험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인가? 자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제 자살은 나약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개인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살은 사회적 문제이며 국가적 문제이다. 다음과 같은 퀴즈를 한번 풀어보자. 정답은 이 글의 끝에 있다.

(1)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몇 번째일까? ( )
① 1위 ② 2위 ③ 3위 ④ 4위
(2)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몇 위일까? ( )
① 1위 ② 2위 ③ 3위 ④ 4위
(3)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살 증가율이 몇 등일까? ( )
① 1위 ② 2위 ③ 3위 ④ 4위

당신은 몇 문제를 맞혔는가? 두 문제를 맞혔다면 자살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지녔거나 자살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세 문제 모두 맞혔다면 당신은 자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 42명이 자살했다. 한 해 동안 무려 1만5413명이 자살했다.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한 것이다. 세계 1위 리투아니아와는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엇비슷하다.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우리나라 전체 사망 원인 4위를 차지했다. 당뇨병으로 숨진 사람보다 훨씬 많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1999년 사망 원인 7위에서 2008년부터 교통사고, 간 질환, 당뇨병 등을 가볍게 제치고 4위로 껑충 뛰었다.

자살은 10~3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이다. 30대에서 남녀 모두 사망 원인 1위이고 40대에서는 남녀 모두 2위를 차지했다. 50대에서는 남자의 경우 4위, 여자의 경우 3위를 차지했다. 60대의 경우 남자는 4위, 여자는 5위를 기록했다.

ⓒ프레시안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자살이 많았던 나라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아시아에서는 그동안 일본이 자살 공화국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살한 사람은 한 해 3000명대 수준에 그쳤다. 이것이 1995년 5000명대 수준으로 늘었고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1998년 8622명으로 급증했다.

외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던 1999년, 2000년, 2001년에는 6000명대로 다소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카드 대란, 양극화 심화 등이 이어지면서 다시 자살자가 늘어났다. 2002년 8612명, 2003년 1만898명, 2005년 1만2011명, 2007년 1만2174명, 2008년 1만2858명에서 2009년 1만5413명으로 정점을 찍은 것이다.

전염병(감염병)이 바이러스나 세균 등 미생물에 의한 질병이라면 자살은 사회적 전염병이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이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자살자 수는 589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24명이 늘어나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자살자가 짧은 기간에 급속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가 병의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제대로 할 수 있듯이 자살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예방 정책을 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약성을 말한다. 한국인들이 나약하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힘들지만 자살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는 사고 자체가 문제다. 과거 흔히 마음을 단단히 먹지 못해 목숨을 끊는다는 말을 많이들 해왔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성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자살을 개인의 성격이나 국민성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자살이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에 있었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는 구제 금융 시기에 이어 경제적 양극화, 실업 대란, 가계 파탄 등이 있었다.

흔히들 자살은 우울증과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자살자의 대다수는 실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우울증이 어디에서 비롯했느냐는 점이다. 또 자살 예방 전문가들은 자살이 술과 우울증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술에 탐닉하는 사회, 우울증 환자가 넘쳐 나는 사회,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증가하는 사회의 밑바닥에는 나눔 문화의 부재, 승자 독식, 황금만능주의, 복지 안전망 미비, 급격한 고령화, 치열한 경쟁 사회, 개인주의, 해고와 실업, 대기업과 부자 세상 등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건강하지 못한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자살 예방 단체와 기관이 전하는 자살에 대한 8가지 오해와 진실(괄호)

△ 자살자는 유서를 남긴다. (유서를 남기는 경우는 12~20퍼센트에 불과하다.)
△ 자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는다. (자살자 10명 중 8명은 자신들의 의도에 대해 사전에 뚜렷한 단서를 남겼다.)
△ 자살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저 관심을 끌려는 것일 뿐이다. (자신들이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지를 누군가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자살하는 사람은 드물다.)
△ 이미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말릴 방법이 없다. (오랜 기간 심리적 고통을 겪거나 우울해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자살 위기를 겪는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 수 있다. 다만 위기는 반복될 수도 있다.)
△ 당사자의 상태가 개선되면 위험은 지나간 것이다. (심각한 우울 상태가 개선되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내에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
△ 자살을 한번 시도한 사람은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낮다. (자살자 중 80%는 자살 시도 전력이 있다.)
△ "자살을 생각하고 하고 있느냐?"고 묻지 말라. 그런 생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자살 위험이 있는 당사자와 자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 자살에 실패했다는 것은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살 방법에 대해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다. 자살 방법보다는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특별대책위원장 변호사 강지원은 얼마 전 민간 자살 예방 단체인 생명사랑문화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해 옆자리에 있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의문의 죽음을 한 주검에 대해서 신체 부검을 하듯이 자살해 죽은 사람은 정신·심리적 부검을 할 필요가 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심지어는 그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물의를 일으킨 뒤에 자살을 택해도 언론은 고인을 미화하거나 생전에 있었던 좋은 일에 대해서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신체 부검이 사인을 밝혀내 범인 검거 등에 활용되는 것처럼 자살 부검은 자살을 택한 원인을 찾아내 앞으로 그와 유사한 사례를 막기 위한 것이다.

▲ 어느 자살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 1856년 헨리 월리스의 작품이다. ⓒwikipedia.org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든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역 공동체는 △농약 등 자살 수단 접근 금지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정신 분열증 등 정신 질환자 관리 △자살 시도 경험자 추적 관리 △미디어의 책임 있는 보도 △1차 보건의료 종사자 훈련 따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 문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은 너무나 더뎠다. 물론 자살 예방과 생문 존중 문화 확산이 오롯이 정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이를 부추기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제정·공포돼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멈출 줄 모르고 달리는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잡아줄 수 있는 구실을 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1년에 1만50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기 위해서는 예산과 사람, 그리고 조직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 문화에 쏟아 붓는 돈은 연간 수십억 원에 불과하다. 이를 보면 아직 정부와 국회가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 문화 확산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언제까지 대한민국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자살 사회의 한 복판에 둘 것인가.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할 때이다. 정부와 민간이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한데 모아 자살이라는 유령을 우리 사회에서 쫒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생명 공화국'이라는 희망의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답 : (1) ② (2) ① (3)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