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18대 대통령선거자료/정책콘서트

[65회] 새 정치는 화합정치입니다

 

정책콘서트 목록 전체보기

 

 

 

강지원의 정책콘서트

65

새 정치는 화합정치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정책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새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원하는 새 정치가 과연 어떤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요즘 여야 후보들을 비롯해서 언론에서 새 정치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후보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던가, 또는 어떤 후보는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면책 특권을 없애자든가 또 정당의 보조금은 어떻게 한다든가 이런 주장들을 하고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이런 공약은 저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본질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이고 세비를 조정하고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진정 원하는 새로운 정치를 위한 수단이나 방법에 불과한 것이지 과연 그것이 목표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인다고 해서 지금의 저 싸움박질이 없어지느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과 방법에 불과한 것이고 더 높은 가치의 새로운 정치를 우리는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짜증을 내는 것이 바로 정치판의 싸움박질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욕지거리구요, 또 여야 대변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입 뗐다 하면 상대방에 관해서 비판하는 이야기뿐입니다. 이 나라가 좀 더 따뜻하고 화합적인 나라가 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네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권력다툼에 혈안이 되고 있는 이런 모습이 가장 우리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동적으로 새 정치란 바로 그러한 싸움박질이 없는 당파 싸움이 없는 그런 정치일 것입니다.

 

저는 이 새로운 정치에 가장 적합한 키워드가 바로 화합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화합정치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대통합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당에서는 국민 대통합을 하겠다고 하고, 야당에서도 대통합적인 그런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대통합이라고 하는 말이 일치하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짐작컨데 지금 여야 후보들이 아주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까, 중도파 또는 무슨 무당파 이런 가운데 지역에 있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득표를 하기 위해서 이런 전략을 내놓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합니다. 세몰이를 합니다. 도저히 보수적인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갑자기 새누리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도저히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람이 또 민주당에 들어갑니다. 이래서 각 정당은 잡탕 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철새들이 선거 때만 나타나는 철새들의 대이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때의 명분이 바로 대통합입니다.

 

이러한 대통합은 결국 자기 휘하의 전부 다 하나로 통합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합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한 개의 정당 밖에 안 남는다고 한다는 해괴망측한 현상이 생겨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른 후보들이 대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성이 우선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득표를 위한 수단, 방법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이것은 새 정치가 아닙니다. 정말 새 정치는 화합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견해가 다른 두 당, 세 당, 네 당이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 서로 싸움박질 하지 아니하고 공존, 공생하고 상생하는 그런 정치가 바로 따뜻한 정치이고 화합적 정치입니다. 이런 정치가 바로 우리 국민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다 내팽개치고 자기들의 세력만 더 늘려서 자기들 휘하에 통합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화합의 정치이고 무슨 새로운 정치입니까.

 

이 같은 화합정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초당적 정치입니다. 이 초당적이라고 하는 말이 국민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초당적인 정치를 구경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당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 되었든 대통령이 되었든 이런 공직자들은 모두 초당적으로 직무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보면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띠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도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초당적으로 해야 됩니다.

 

이 말을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해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적으로 직무를 행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당론이 찬성하라 반대하라 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에 맹종을 해서 패거리 작당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국회의원은 대부분이 정당을 가지고 있는데 초당적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니 이해가 잘 안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미FTA를 찬성하라! 이것이 당론으로 지령이 내려왔다고 칩시다. 그런데 나는 농촌출신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반대하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자신이 비록 정당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초당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대통령이야말로 초당적인 정치를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 원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정의 최고 조정자입니다. 대통령이 어느 한 편파적인 생각의 두목 노릇을 하게 되면 늘 대립과 갈등의 대척점에 서게 됩니다. 오죽하면 노무현 고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이제 더 이상 대척점에 서 있게 되지 않아서 편안하다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 역시 어떤 이념적인 또는 여러 가지 지역적인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척점에 서서 그래서 초당적인 정치를 못했다고 하는 그런 자백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무조건 초당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소속 정당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고 조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탈당을 해야 합니다. 또 탈당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준 탈당에 가까운 조치를 취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지난 95일 출마선언 때부터 초당적 정치를 주장을 해왔는데 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이 선거에서 승리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 당의 원내 대표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미국에 재정 절벽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 관해서 초당적으로 협조하자라고 전화를 합니다.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전화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별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패배자 롬니입니다. 롬니는 패배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당파적 논쟁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그 사람들은 그렇게 정치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초당적이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웃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주장한 초당적이란 말이 어떻게 미국에 건너가서 초당적이라는 이야기들이 각 당의 후보자들의 입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의 후보들 입에서는 단 한마디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느냐.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당선이 되면 또 편파적이고 파당적인 그런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각성을 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초당적 화합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과거에 구한말에 개화파와 쇄국파가 얼마나 싸웠습니까. 그렇게 국론이 통일되지 아니하고 서로 화합하지 아니하고 치고 받고 싸우다가 권력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쳐먹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병자호란 때 주하파가 있었고 주전파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그때 싸웠습니까. 이렇게 화합적인 정치를 모르는 자들이 왜 나서서 국민들을 괴롭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제는 정치판에서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청소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흙탕물 정치를 청소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출마선언문에서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대북정책을 보십시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를 했습니다. 한 때는 퍼주기라고 비난받다가 한 편에서는 너무 강경하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왔다 갔다 합니다. 도대체 우리 국민들도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보겠습니까. 국제적으로 신뢰성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래서 저는 대북문제에 관해서도 대통령 직속으로 대타협위원회를 만들겠다. 그래서 대타협을 하고 거기에서 화합된 가운데서 정책을 창출하고 그리고 대북교섭에 나서야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복지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저 한쪽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런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이 끊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부적으로 대타협을 통해서 최적의 수준을 찾아야 됩니다. 최적의 수준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화합정치의 길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다른 후보들도 저의 취지에 공감했는지, 비슷한 주장들 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베껴갔다고 그래서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우리 정치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과연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가, 초당적 화합정치가 왜 필요한가에 관해서 저의 공약을 말씀드렸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