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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선거자료/정책콘서트

[제5회] 홍익자본주의를 제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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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의 정책콘서트

5

홍익자본주의를 제창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편히 주무셨습니까? 하하하. 웃긴 웃으시는데 잘 주무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5회 정책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4회에 걸친 정책콘서트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말씀드렸지만, 주로 정치 개혁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초당적 정치개혁! 정치분야에 관한 저의 공약을 줄여서 말한다고 한다면 초당적 정치개혁입니다. 말하자면, 정당 출신의 대통령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이런 공약들을 내건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초당적 거국내각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영조대왕이 언급한 것 같은 탕평인사를 하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특정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것을 하겠습니까? 자기 정당 사람들, 자기 패거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다 장관으로 등용하고 임명을 할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저는 무소속 초당적 대통령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혀 없었느냐?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대통령들이요, 임기 말기가 되면 인기가 없어 쫓겨나서 무소속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누구누구 대통령.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쫓겨나서 무소속 되지 말고 처음부터 무소속 하세요. 저는 그런 요구를 하는 거죠.

 

금방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정치 역사가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이게 아주 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정말 막강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나치게 과잉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데, 이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한 정당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여당이라고 하고 반대되는 사람을 야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이 허구한 날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 숫자도 300명에서 싹뚝 반토막을 내서 절반으로 줄이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거 정당 출신 대통령이 하겠습니까? 왜냐? 다 자기 정당 식구들이 자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는데 그 중에서 싹뚝 반토막으로 잘라서 밥줄을... 밥줄을 잘라요? 그거는 불가능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정치 개혁의 시대에는 정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저는 초당적 정치개혁 이런 주제로 며칠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앞으로 정치개혁에 관한 다른 주제들에 관해서는 또 말씀드릴 기회를 갖겠습니다.

 

오늘은 경제문제에 대해서 첫 번째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홍익자본주의를 제창함이라는 주제입니다. 홍익자본주의! 홍익인간 아시죠? 홍자가 무슨 홍자입니까? 넓을 홍, 익자는? 이롭게 한다는 거죠. 홍익이라는 뜻은? 넓게 이롭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 그리고 우리 공동체, 전체를 널리 이롭게 하는 것. 그게 바로 홍익입니다. 넓게라는 말을 크게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해석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넓게 크게 많은 이들에게 이롭게 해야한다. 그게 바로 홍익의 정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홍익자본주의라고 하면 어떨까요? 상상이 가십니까? 어떤 자본주의라고 느낌이 오시나요? 아직 제가 설명 드리기 전에 소감을 여쭈어보는데...

, 자본주의. , 맞습니다. 선생님은요? 같은 생각이십니까?

 

 ,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자본이라고 하면 욕망입니다. 욕망의 덩어리입니다. 돈이라고 하는 이 욕망은 그 욕망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추가합니다. 이게 자본의 속성입니다. 그래서요. 왜 인류역사상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시장경제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다 장사를 할 수가 있고 돈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게 근대사회에 들어선 것인데, 이래서 시장에서 매매가 이루어지고 화폐가 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본이라고 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돈을 점점 더 잘 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돈을 가진 사람들은 돈을 점점 더 벌 수가 있지요. 돈 없는 사람은 점점 더 큰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돈 없는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이게 바로 양극화입니다. 그래서 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혜로 나타난 것이 양극화인데, 이 사회를 툭 치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칼 막스입니다. 이 사람이 자본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도대체 잘 사는 사람은 점점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점점 못 사는 이런 세상이 어디있느냐? 그렇게 해서, 이게 자본이 문제다 라고 해서 자본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원래 이 자본주의를 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칼 막스가 자본론이라는 말을 치고 들어오니까 그래서 이쪽이 자본주의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칼 막스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어쩌구 어쩌구 하더니 그 인류역사상 수십년 장난치다가 다 망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다 망했습니다.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가 우리 인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겁니다. 요즘 자본주의 위기다 하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자본주의 위기다 얘기 들어보셨어요? 못 들어보셨어요? 자주 나오죠? G20 정상회의라던가, 또 무슨 다보스포럼이라던가. 이런데서 자본주의가 위기다 라고 얘기하지요. 왜 위기라고들 하는지 생각나십니까? . 너무 어렵습니까? 자본주의가 위기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이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를 망하게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 잠시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지요. 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시작이 될 때, 아직 이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돌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이게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칼 막스가 지적한 것처럼 엄청난 사태가 생긴 거예요. 부익부, 빈익부 현상이 생겨난 거예요. 그래서 큰일났다. 안되겠다. 국가가 개입해야 되겠다. 그래서 케인즈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을 하고 소위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하고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뉴딜정책이 나오면서 시장에 대해 조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국가가 자꾸 개입을 하게 되니까, 또 반론에 부딪치게 됩니다. 왜 자유롭게 놔두지 않고 왜 자꾸 간섭을 하느냐. 그러니까 여러분 아시다시피, 하이애크라던가 이런 사람들이 자유주의를 계속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간 것이 바로... 뭐죠?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가 좋은 방면으로만 작용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과거에 세계 금융위기 소위 금융자본주의라고 해서 미국 월가에서 이 머리 좋은 천재들이 앉아서 요상한 파생상품들 만들어냅니다. 이거는 정말이지요. 잘 되면 떼 돈을 벌구요. 그렇지 않으면 몽땅 망하는 그런 상품들입니다. 이거 보통 머리 좋은 사람들 아니면 못 만듭니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 해서 만든건데, 그게 뻥 터졌어요. 그게 뻥 터졌어요. 그래서, 그래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겁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니 뭐니 하면서 다 그래서 발생을 한 것인데, 참 이 미국에 월가라고 하는 것이 금융 아닙니까? 이 금융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못 됬다. 못 됬다. 이래도 되느냐? 그렇게 못된 짓을 하고서도 말이지요. 그 월가에 ~한 금융회사에 회장 이런 사람들 엄청난 스톡옵션에다가 연봉이 어마어마하다. 미국 의회에서도 논의가 되었어요. 당신들 너무 많이 받는다. 막 야단법석이 난 겁니다. 그 미국에서의 위기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그렇게 국제 경제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건 뭐냐? 무한정한 자유를 주었더니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다 써도 된다고 하는 이런 파렴치한 형태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고가 팽배해진 겁니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가 어떻습니까? 돈 가진 사람들 돈 잘 벌 겁니다. 자본 가진 사람들 점점 더 자본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빈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2차 대전 때 그 때 경험했던 그 이상으로 지금은 양극화가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돈 잘 가진 사람들이 돈 잘 쓰면 좋습니다. 또 거기까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고를 칩니다. 금융사고가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래서 정말 자본주의는 위기에 봉착해있다. 그러면 그 원인이 뭐냐. 신자유주의를 모르냐, 아니면 자유에 대해서 규제를 하고 통제를 하는게 옳으냐, 이 치열한 논쟁이 수도 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헌법 제119조를 보면 1항과 2항이 있습니다. 1항에서는 시장의 자유와 창의를 주장합니다. 시장에 자유를 주라는 겁니다. 2항에서는 뭐냐. 이게 잘못 나갈 수 있으니까 남용을 방제하고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두가지를 다 하라는 겁니다. 어느 하나만 우선적으로 하라는게 아닙니다. 요즘 경제 민주화 논쟁이 있는데 그거는 2항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2항을 얘기할 때도 1항을 얘기해야하고, 1항을 얘기할 때도 2항을 얘기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명령은 이 두 가지를 고루 다 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균형과 조화입니다. 우리는 늘 어느 한쪽에 편파적일 때 사고를 칩니다. 그래서 저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1191항과 2항이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이 자본주의 라는게 무슨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사고를 치나 그래서 궁리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욕망입니다. 탐욕입니다. 인간이 내 잇속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짐승과 버러지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짐승과 버러지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짐승들은 서로 싸우면 상대방을 죽입니다. 그리고 잡아먹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권투 시합을 하면 이긴 사람은 1등이지만 진 사람은 2등입니다. 2등을 때려죽이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게 인간과 짐승의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짐승과 같이 버러지와 같이 살아야하느냐.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는데 이 자본주의가 가야 할 정말 훌륭한 길을 찾아야하겠다. 그 길이 무엇일까? 그 길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자본주의 앞에 수식어를 붙이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앞, 뒤에다 수식어를 붙이는게 유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무슨 자본주의 앞에가 박애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무슨 자본주의 막 이렇게 수식어를 붙였어요. 앞에다만 붙이는게 재미가 없으니까 뒤에다도 붙입니다. 자본주의2.0, 4.0 이렇게 자꾸 붙이는거죠. 그런데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면서 홍익이라는 단어를 찾아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홍익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 나라에 수천년 전부터 있어 온 우리 국민들의 DNA 속에 잠재 되어있는 정신이 바로 홍익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법에도 보시면, 홍익인간의 이념을 받든다는 규정이 명시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제 분야에 있어서 이 홍익의 개념을 도입할 수는 없을까? 그것을 이름하여 홍익자본주의 라고 부르자. 제가 이렇게 이름을 한 번 붙여봤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발음이 괜찮습니까? 그래서 홍익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일까? 자 자본은 지 잇속을 생각하는 속성이 있지요. 그러니 인간이 자본이 제 잇속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제 잇속도 챙기지만 나의 사랑하는 이웃 그리고 공동체에도 이롭게 하는 그런 자본주의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내 잇속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나의 가족, 또 우리 동네, 우리 국민, 세계 인류에 모두 보탬이 되는 그런 자본주의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여러분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를 아실 것입니다. 이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이 오척단구의 손바닥만한 인간, 몸뚱아리, 이게 나다. 이게 나다. 그런데 나의 몸을 점점 확대해봐라. 그러면 나의 가족도 내가 되고, 우리 동네 사람들도 내가 되고, 우리 국민도 나가 되고, 전세계인구도 나가 된다. 나의 범위가 점점 커져간다면 온 인류가 나와 같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우리가 사랑과 자비를 가리킵니다. 사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또 불교에서는 자비의 정신으로 인보의 정신을 갖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나를 넘어서서 나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해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 사랑과 자비가 가장 넓어진 것이 바로 홍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넓게, 가장 크게 사랑하는 것이죠.

 

여러분 경주 최부자 집 얘기 아시죠. 경주 최부자. 씩 웃으시기만 하는데, - 모르세요? 모르셔서 그렇구나. 경주 최부자가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1만석 이상은 벌지마라. 1만석 이상은 벌지말라. 그랬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아니, 이 가족이 워낙에 부자니까 2만석, 3만석까지도 벌 수 있어. 그런데 1만석 이상은 벌지 말라고 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충분히 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더 넘어가는 것들은 남들 벌어먹도록 남겨두세요. 라고 한 겁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옛날에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뭐 먹을 건 남겨둬? 까치 먹을 건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이 우리나라 조상들의 지혜가 이렇게 찬란합니다. 그 까치 먹을 것 까지 몽땅 싹 쓸어가지고 다 먹어버려? 그럼 까치는 뭐 먹고 삽니까? 까치는 뭐 먹고 삽니까? 까치 멸종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먹을 것을 챙기지만, 그러나 까치 먹을 것도 남겨두자는 정신입니다.

 

경주 최부자가 더 나아가서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흉년에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 땅을 값싸게 내놨는데 그 때 사 놓으면 나중에 값이 오르면 때 부자가 되지요? 때 부자가 되겠죠? 부동산 투기라는게 그런 겁니다. 값 쌀 때 샀다가 나중에 뻥튀기 되는 겁니다. 그렇게 부동산 투기 할 수 있습니다. 그거 하지 마라 한 겁니다. 그거 하지 마라 이겁니다. 100만원짜리 10만원에 팔 수 밖에 없는 그 고통받고 가난한 이들의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냐는 겁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이 흉년이 들어서 어려울 때, 그럴 때 값싸게 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그 이들.

 

저 여수에 가면 또 유명한 집이 있습니다. 그 댁에서는 큰 가옥이 있는데 그 가옥의 뒷켠에다가 쌀 뒤주를 갖다 놓고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마음 놓고 퍼가게 했다는 겁니다. 근데 정말 이 기가막힐 정도로 훌륭하신 것은 남의 집에서 쌀 퍼가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챙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뒷켠에 남 몰래 남들 눈에 비치치 않을 때 쌀을 퍼갈 수 있도록 이렇게 배려를 했다는 겁니다. 그게 가진 사람들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까치 먹을 것 까지 다 쓸어먹는거 좋은거 아닙니다. 그래서 이 홍익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잇속도 챙기지만, 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지요. 그런데 동시에 우리 사랑하는 이웃들과 공동체가 함께 더 넓게 이롭게 해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것을 저는 홍익자본주의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설명을 듣고 나니까 어떠세요? 말씀을 듣고 쓱 미소를 지으시는데. 하하

 

그래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홍익자본주의를 이 땅에 정착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더 노력할 것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정책콘서트를 통해 제시해드리고자 합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서구에서 발달한 것입니다. 근데 서구 사람들이 최근에 이르러서 얼마 좀 더 물질적인 사고에 능해있기 때문에 너무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동양에서 많은 지혜를 찾습니다. 뭐 여러분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 라는 소설을 보셨겠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비롯해서 많은 지혜들을 동양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구에서 발달한 자본주의가 동양에 왔습니다. 그것도 한반도에 왔습니다. 한반도에 왔더니 홍익이라고 하는 찬란한 정신이 수천년전부터 있어왔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홍익을 만났다. 그래서 홍익자본주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라고 한다면 얼마나 찬란한 새로운 문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성공한다면, 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와서 홍익자본주의를 이제 다시 배워가야 할 때가 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홍익자본주의가 성공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공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홍익자본주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을 합니다.

 

먼저 기업, 기업은 홍익적인 기업이 되어야 할 것을 권고합니다. 기업이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널리 자신들과 관련된 분야들, 예를 들어 소비자들에게는 나쁜 제품 속여서 팔지 마세요. 좋은 제품, 정말 이로운 제품 파세요. 협력 업체들에게는 헐값에 깎아서 납품받지 마세요. 그리고 내부의 고객인 직원들 너무 박봉에 시달리게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이 기업이 둘러싸고 있는 많은 요인들에게 고루고루 모두 이롭게 하는 기업이 되세요. 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잇속만 챙기는 노조가 되지 말고 다른 노조들과도 비교해보고 회사의 경영 상태도 살펴보고 그래서 노조도 넓게 이롭게 하는 노조가 되세요. 그래서 홍익적 노조가 되세요. 단체도 홍익적 단체가 되세요. 국가도 홍익적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는 그런 제안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홍익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수없이 반성을 했습니다. 회개를 했습니다. 나는 과연 그동안 얼마나 홍익적으로 살아왔는가. 내 잇속만을 위해서, 나의 앞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상한 짓들을 하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가슴에 손을 얹고 회개하고 반성하고 또 지금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홍익적인 삶을 지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나라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성스럽고 훌륭해질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질문자1: 좋은 말씀인데, 듣는 입장의 사람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까. 당장 이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사람들이 욕망을 최대한 절제를 해야지 행복하다는 가치관이 머릿속에 뿌리 박혀있는데 그런데 이런 가치관을 홍익 자본주의로 바꾸려면 남과 더불어서 사는 홍익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게 교육 차원에서 소싯적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평생 교육으로 이어져서 홍익정신이 교육으로 실현될 수 있는 교육 전문가가 이번에는 대통령이 되어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시 강변호사님께서는 지금까지 청소년이나 교육문제에 대해서 철학을 갖고 계신지?

 

답변: 고맙습니다. 욕망의 절제. 이거 정말 어려운 과제입니다. 욕망이 없다면 우리가 상처받을 일이 있을까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이 상처를 받지 않는 지름길이고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으면 바로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가치관. 마음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 이런 생각들이 잘 체화되었으면 좋겠다. 연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데 대한민국 교육법에는 홍익정신을 본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하시기에 이 나라 교육이 홍익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저 달달달 외워가지고 대학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심지어는 커닝도 하고 이런 교육들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 청소년들이 행복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정말 어렸을 적부터 이런 교육들을 했으면 좋겠는데 교육이라고 하면 이게 또 너무 일방적입니다. 가르치는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저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게끔,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끔. 이런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는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공부 잘하는대로 상처받습니다. 맨날 1등만 해야되는데 2등 해보세요. 엄청 상처 받습니다. 근데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공부 못한다고 구박 받아서 엄청 상처를 받습니다. 이 나라의 교육의 현장은 상처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랑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정말 마음의 상처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 아이들이 배가 아플 때 엄마들이 따뜻한 손으로 이렇게 만져주죠? 그러면 낳지요? 그래서 무슨 손이라고 그래요? 약손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내가 엄마와 같은 노력을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내 상처에 대해서 스스로가 따뜻한 약손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배를 살살 만져주면서 뭐라고 그럽니까? 뭐라고 그러십니까? 괜찮아. 괜찮아. 내 손 약손이야. 낳을거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내가 데리고 있는 또 아이라고 생각하시고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시고 야, , 괜찮아 곧 나아질 거야. 상처 괜찮아질 거야. 라고 따뜻한 약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교육,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고 우리가 체험으로 통해서 실습을 통해서 연습을 통해서 체화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행복해지는 돈이 행복하고 감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그런 교육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이 교육에 관한 저의 정책을 다음 적절한 기회에 이 정책 콘서트에서 발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 개봉박두입니다. 다른 분들 있으십니까? 시간이 다 돼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